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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시장
미륵; 영원한 공존
  • 유혜숙
  • 2019.09.18 ~ 2019.09.24
  • 1전시장
유혜숙, 미륵-57,호기리, 2019
유혜숙, 미륵-77,정읍미륵사,2019
유혜숙,미륵-5,창덕암, 2017
유혜숙,미륵-55,  인후동, 2019
유혜숙,미륵-86, 과립리, 2019
Gallery1_유혜숙_전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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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혜숙, 미륵-57,호기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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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혜숙, 미륵-77,정읍미륵사,2019
    유혜숙, 미륵-77,정읍미륵사,2019
  • 유혜숙,미륵-5,창덕암, 2017
    유혜숙,미륵-5,창덕암, 2017
  • 유혜숙,미륵-55,  인후동, 2019
    유혜숙,미륵-55, 인후동, 2019
  • 유혜숙,미륵-86, 과립리, 2019
    유혜숙,미륵-86, 과립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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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숙 Haesook Yu


가톨릭 대학교 졸

전주대학교 문화산업대학원 사진 영상 전공


2019 갤러리밈, 서울

2019 아트갤러리 전주

2018 전주국제사진축제

2017 전주국제사진축제

2017 전북미술회환

2017 대둔산미술관


작가노트

미륵


어느 날 금산사 주변의 작고 오래된 집에서 염원을 담은 수많은 초와 그 촛불에 검게 그을린 불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불상의 머리 부분은 누군가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상태였는데, 이 작은 불상의 기이한 표정은 한동안 짙은 잔상으로 남아 맴돌았다. 예기치 않았던 만남은 어떤 의문을 촉발시켰다. ‘이 불상의 정체는 무엇인지?’, ‘왜 그곳에 있으며 그토록 생경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사람들이 이 불상을 왜 ‘미륵 할머니’라고 부르는가? 에 대한 것이었다. 우연처럼 다가온 미륵과의 인연은 집 앞에 병풍처럼 넓게 펼쳐져 있는 모악산을 바라보며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해 온 현세 속 영원성의 공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주었다.

사진 연작<미륵>은 전라북도 소재의 모악산을 시작으로 진행되었다. ‘어머니 산’, ‘큰 산’으로 불리며 이 지역의 미륵신앙을 일궈낸 금산사를 품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익산의 백제 무왕부부의 미륵사지 설화와 더불어 이곳은 통일신라, 후백제, 고려를 지나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얽힌 다양한 미륵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미륵신앙은 근대에 이르러 증산교, 원불교, 동학 등 근대 민족종교와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미륵에 대한 사진작업은 김제, 정읍, 고창, 부안, 임실, 오수 ,남원, 전주 등지에 분포하는 미륵불과 그 신앙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 속, 마을 주변, 도로변, 작은 절집, 사찰의 미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그 자체로 이 작업의 실질적 과정이었다. 사람과 미륵 사이에 존재해 온 상생과 갈등의 흔적은 잘려나간 신체의 일부들, 마모된 코와 눈 그리고 본래의 자리로부터 이탈하여 낯선 어딘가에서 발굴되는 미륵의 모습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미륵들은 다분히 기형적이고 분열적 존재로, 현실세계 어느 지점에 희미하게 잔존한다. 미륵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수용형태도 개별적이고 다층화 되었다. 우리 앞에 도래하지 않은 메시아를 상상하고 갈구하는 마음으로부터 탄생한 미륵은 각기 다른 이유와 목적으로 만들어졌기에 모두가 다르고 동시에 모두가 같다. 이러한 미륵은 낮은 차원의 접근을 허용하여 친근한 방식으로 신을 소환해낸다. 미륵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동안 사람들의 터전 가까운 곳에 세워진 미륵에서 신의 현현을 느끼고 깊이 감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현세의 고난과 혼란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구원자를 기원하였던 간절함은 시공을 넘어서는 영성의 매개로 작동한다. 이 시대의 미륵이 살고 있는 공간들을 사진으로 기록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근대화이후 급속하게 진행되어 온 진보와 발전의 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부조리와 혼란, 갈등과 파괴의 구조와 역학관계의 대립각이 소멸되어지는 완충지, 즉 실재하는 성소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비추어 내고자 하였다. 자연의 영험함속에 인간의 정성과 염원을 쏟아 탄생한 미륵불은 우리 민족의 애환과 해학을 담은 한편의 축적된 서사시라 할 수 있다. 본 <미륵>연작은 미륵의 현대적 양상과 일상의 편재성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이자 인간과 신사이의 대화가 머물고 있는 공간에 새겨진 마음의 역사에 대한 첫 보고서이다.-유혜숙(2019,7)


전시평론

유혜숙- 미륵불이 살아 있는 공간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우리 민족은 선사시대부터 뿌리 깊은 바위 신앙을 토대로 돌을 사랑했고, 돌의 원형태에 걸맞게 자신들의 심성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새겼다. 특히나 미륵신앙에 의해 조형된 미륵상은 이 땅에서 살았던 선인들의 얼굴처럼 가식이나 형식미를 배격하고 자연주의적 신성을 최대한 살려 소박한 심성이나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생각해보면 미륵불을 만든 고려시대 지방의 무명 장인들은 대부분 당시 정통 불상 조각의 제작 기술과 이론 밖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봉착한 제작상의 문제를 스스로 극복해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어떤 원칙이나 법칙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았으며 그것을 제작한 이들의 취향이나 자유의지, 타고난 솜씨나 눈썰미가 작품을 결정적으로 좌우했을 것이다. 기존의 규범이나 정해진 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타고난 성품과 솜씨에 기인한 자취가 백제문화권과 고려시대 지방호족의 영향력 아래 자리한 미륵불의 미감이다. 그 지방에서 채석되는 돌이 지닌 석질에 조화, 순응하면서 세부적 묘사의 대담한 생략과 집약된 선의 부조로 이루어진 미륵불은 오늘날 돌아보았을 때 경이로운 힘과 조형미를 지닌 뛰어난 예술작품에 해당하기도 한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다음에 올 부처님으로 흔히 메시아로 통한다. 현재 도솔천에 머물면서 56억 7천 만 년 뒤 이 세상에 나타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세 번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미래불이 미륵불이다. 미륵불이 지닌 이른바 미륵 하생신앙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미완의 꿈, 그러나 그 꿈이 기어이 완성되리라는 희망과 믿음 및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갈망하는 다분히 혁명적인 사유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각박한 세상살이에 시달릴 때면 옛사람들은 도처에 돌미륵을 세우고 기적을 염원했다. 현재 잔존하는 오래된 미륵불은 대부분 경기 충청 호남, 즉 국토의 서쪽, 옛 백제 문화권에 집중되어 있다. 화려한 사찰에 모셔진 미륵불도 있지만 이름 없는 당집과 전각, 노천에 방치되어 있는 불상도 적지 않다. 오랜 세월 살아남아 지금에 이른 험난했던 경로를 밝히는 동시에 사람들의 삶의 터전 가까이에 공존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생과 간절하고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힘껏 방증하고 있다.


유혜숙은 자신의 삶의 주변에서 접한 미륵불을 다시 보여준다. 김제 모악산에 자리한 미륵 신앙의 성지이자 백제의 사찰인 금산사에서 접한 미륵불이 계기가 되어 이를 중심으로 이후 익산, 정읍, 고창, 부안, 임실 오수, 남원, 전주 등지에 흩어져 있는 돌미륵을 촬영했다고 한다. 문수사, 미륵사지, 천고사, 용담사, 송화사, 금강 관음사, 부안 용화사, 단암사, 진북사를 비롯해 운선암, 덕음암, 도동암 그리고 신계리, 건동리, 지당리, 학정리, 호기리, 봉암리와 전주의 서서학동, 인후동 등에 놓인 여러 미륵불이 그 대상이다. 사찰과 암자, 여러 마을이 뒤섞여 있다. 미륵불을 찾아 나서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하는 일은 특정 지역에서 살았던 선인들이 그곳에서 미륵과 함께 삶을 꾸려나갔던 길, 꿈을 꾸고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희구했던 모종의 자취를 기억하거나 애도하는 여정이자 그 모든 것을 복기하는 자리와도 같다.

그러니까 작가는 천 년 혹은 수백 년 전에 조성된 미륵불이 현재 잔존해 있는 공간을 탐사하고 이를 기록했는데 이는 결국 “미륵이 살아 있는 공간”에 대한 사진작업이자 “인간과 신 사이의 대화가 머물고 있는 공간에 새겨진 미륵의 역사”를 탐색하는 일에 해당한다. 이는 단지 미륵불 자체의 사진적 재현이 아니라 어쩌면 그것이 놓인 특정한 자리, 그곳에서 미륵불이 뿜어내는 기운을 포착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미륵불에 대한 신앙과 문화, 그 기억과 기원, 정신세계를 더듬는 일에 가까워보인다.

흑백의 사진 속에 들어온 미륵불은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보다는 부분적으로, 안타깝게 주변 환경 속에서 겨우 자리하고 있다. 오랜 세월 버티고 살아온 돌미륵은 제 스스로의 이력을 마모된 피부와 돌 꽃, 여러 상처 등을 통해 드러낸다. 대부분 선명한 형상은 지워지고 다시 돌로 돌아가려는 관성의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들이다. 작가는 그 상황을 근접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돌이자 미륵불의 형상이고 유이자 무이며 생이자 죽음이 그렇게 한 몸 안에서 공존한다. 본래의 모습에서 무척이나 변형된 지금의 저 미륵불은 돌 위에서 아득한 세월과 시간, 죽음 그리고 사라진 헛된 희망을 동시에 미륵불에 투사했던 그토록 간절했던 누군가의 생의 욕망을 안타깝게 호명한다.


시간과 세월의 힘에 눌려 부식해가는 미륵불은 돌이자 종교적 대상물이고 동시에 지금 우리가 미술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이기도 하다. 당시 그것을 만들었던 이들이 지닌 극진한 불심, 도래할 미륵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이 저 미륵불에 기원한 생의 투기와 내세에의 열망과 극락과 도래할 궁극의 유토피아에 대한 염원을 지닌 턱이 없는 이들에게 저 돌로 된 물질의 세계는 다분히 불가사의하고 초현실적일 것이다. 추상화된 역사의 잔해가 그로테스크하기 만한 물질 속에 깃들어 있는 미륵불에서 미를 느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에서 모종의 마력을 느끼는 이유는 또한 무엇일까? 종교적 힘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미륵불이란 대상은 전혀 이질적이거나 미적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그 믿음의 한 자락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어서 지금 사찰이나 조그마한 암자에 놓인 저 미륵에 갖다 기대어 제 생애를 온전히 투기하는 이들이 있다.

반면 그 믿음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모종의 ‘고독’이 따르고 다만 심리적이고 감상적인 면이 대신한다. 미학이나 논리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신앙이 있고 그와는 반대로 물질 자체와 주변의 분위기 자체만으로 미적인 것, 온전히 감각적인 것을 수습하려는 이가 있다는 얘기다. 불교와 미륵사상에 대한 역사성이나 교리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이들에게 미륵불은, 돌로 이루어진 조형물의 흔적은 그럼에도 모종의 아름다움을 거느린다. 동시에 본래 종교적 경험을, 신앙을 향해 나가기 위한 매개였던 미륵불이 이제 그 자체로 모종의 기운과 영기를 뿜어내면서 작가에게 다가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바로 그 느낌을, 정서적인 반응을, 적절히 표현하거나 지시하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를 사진으로 포착하려 하는 것 같다.


유혜숙은 미륵불을 새겼던 인간의 마음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특정 종교의 문제, 신앙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한국인인 이상 작가의 핏속에는, 심상의 기억 속에는 산 속과 사찰, 미륵불이나 오래된 돌과 이끼, 녹아내린 촛농 등 온갖 신앙심의 발로들이 이룬 여러 흔적들이 충분히 마음을 흔들어놓았을 것이다. 그 애매한 동요와 충격, 이끌림이 카메라를 견인하는 동인이었으리라. 따라서 이 사진은 미륵불이나 사찰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정보적 사진은 아니다. 오로지 그런 목적으로 찍는 사진을 논외로 한다면 결국 모든 사진은 그 대상에서 촉발된 자기 내면의 정신으로 겨냥된다.


유혜숙은 당혹스럽게 마주친 것, 미륵불을 사진 찍음으로서, 사진적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서 비로소 자기가 무엇 때문에 그것에 경도되었는가를 질문하고 이후 조금씩 알아가고자 한 것 같다. 사진은 그렇게 자기를 아는 과정이다. 그것은 지식이나 사상에 앞서는 일이다. 그것을 작품에서 형태화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만 자기가 어떤 생각으로 그 대상에 근접해서 촬영하고자 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비로소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되어 나온 후에, 가시적 존재로 출현한 후에 비로소 자기에게 어떤 감정과 사상이 있었기에 그것을 찍고자 했는지를 비교적 선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명하게’라고는 했지만 이 미륵불의 경우, 사찰의 경내나 그 주변 풍경이나 사물들의 편린은 선명할 수 없는 것으로 다분히 무의식적이고 어딘지 애매하고 모호한 구석들이 안개처럼, 거미줄처럼, 빛바랜 흔적처럼 깔려있는 것들이다. 비의적인 분위기로 충만하다.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의 지층 너머 너무 깊숙이 자리한 것들을 건드리는 심상적 기억에 해당하는 것이라 모종의 문화적 원형이고 사라지고 흩어진 기미이자 자취다. 다만 기억과 기억, 피와 핏속에서 전해지는 것들이다. 나라고 여긴, 자기의 배부를 뚫고 들어가 있는 이른바 전통이라는 것이자 문화와 역사에 맞닿아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사진적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는 것, 아니 그 기미를 알아채고 이를 촬영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었다는 것은 결국 자기(주체)를 알고자 하는 것이요 또한 이미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자 하는 알 수 없는 욕망에의 이끌림은 아닐까? 여기에는 또한 근대에의 초극과 한국문화와 정신의 원형과 맞물린 여러 문제들 역시 가늘고 촘촘히 퍼져있어 보인다. 그 중심에 타문화와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는, 사진을 이해하는 나름의 정신도 설핏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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