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이주원
Lee Joowon

B.F.A College of Fine Arts, Seoul Nat'l Univ.

M.F.A College of Fine Arts, Seoul Nat'l Univ.

Ph.D in Applied Art, Hanyang Univ.

 

Assistant Professor of Dongguk Univ.

 

2022 The 19th Solo Exhibition (GalleryMEME, Seoul)

2020 The 18th Solo Exhibition (Kunho Museum, Seoul)

2019 The 17th Solo Exhibition (GalleryMEMEe, Seoul)

2018 From Jeondeungsa (Indipress Gallery, Seoul)

2018 Mentor - Mentee (Hanwon Museum, Seoul)

2017 The 16th Solo Exhibition (Insa Art Space, Seoul)

2017 Korean Painting - Throw out the Basic (Fill Gallery, Seoul)

2017 Mentor - Mentee (Hanwon Museum, Seoul)

2016 PLAS2016 (COEX, Seoul)

2015 The 15th Solo Exhibition (Ara Art Center, Seoul)

2014 The 9th Seoul Open Art Fair (COEX, Seoul)

2013 The 12th Solo Exhibition (Gong Art Space, Seoul)

2011 Summer (Gong Art Space, Seoul)

2011 The 9th Solo Exhibition (Gong Art Space, Seoul)

2009 KIAF2009 (COEX, Seoul)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학사졸업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과 석사졸업

한양대학교 일반대학원 응용미술학과 박사졸업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조교수

 

2022 제19회 개인전 (갤러리밈, 서울)

2021 현대 불교미술전 공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서울)

2020 제18회 개인전 (금호미술관, 서울)

2019 제17회 개인전 (갤러리밈, 서울)

2018 전등사로부터 (인디프레스 갤러리, 서울)

2018 멘토멘티전 (한원미술관, 서울)

2017 제16회 개인전 (인사 아트스페이스, 서울)

2017 한국화 바탕을 버리다 (필갤러리, 서울)

2017 멘토멘티전 (한원미술관, 서울)

2016 PLAS2016 (코엑스, 서울)

2015 제15회 개인전 (아라 아트센터, 서울)

2014 제9회 서울오픈아트페어 (코엑스, 서울)

2013 제12회 개인전 (공 아트스페이스, 서울)

2011 여름생색전 (공 아트스페이스, 서울)

2011 제9회 개인전 (공 아트스페이스, 서울)

2009 KIAF2009 (코엑스, 서울)

 

 

작품평론

 

어떤 방랑자

“기관 없는 신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생동하는 신체이다. 자신의 유기체에 달려있는 기관들의 조직화를 날려버림으로써 신체는 더욱 더 생기가 충만하게 된다.”(들뢰즈 & 가타리)

길에서 어떤 방랑자를 조우했습니다. 방랑자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늘 떠돌아 다녀 관찰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 장소에 오랜 기간 머물며 현지조사해야 하는 인류학의 기존관행을 깨고 유목적(nomadic) 참여관찰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습니다. 9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방랑자에 대한 유목적 참여관찰 결과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랑자 신체의 가장 큰 특징은 기관(機關)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기관 없는 그의 신체는 기관을 가진 제 신체보다 훨씬 더 활기차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방랑자는 저의 신체를 잠시 훑어보더니 짤막한 말을 던졌습니다.

“그대는 기관에만 의존해 살아가니 생기(生氣)를 잃어버렸군.”

방랑자가 말한 기관(organs)은 중의적(重義的)인 표현이었습니다. 기관은 생물학적으로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신체 조직(organisation)이기도 하며, 또한 기관은 사회학적으로 삶의 다양한 영역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조직을 의미합니다. 일차적으로 우리의 신체는 생물학적인 기관의 명령에 길들여져 고정된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즉, 신체는 유기체(organism)가 되는 것에 목표를 두고, 모든 기관을 생명유지라는 하나의 중심으로 통합시키고,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여 하나의 역할만 강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기체적 기관의 메카니즘에 우리 신체는 최적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체제유지라는 대명분하에 사회화 기관의 부름에도 선뜻 응하게 됩니다. 우리 신체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회화 기관의 강제나 통제를 통해 일사불란하게 표준화, 체계화, 조직화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기관이 부착되어 무거울 대로 무거워진 나의 신체를 느낀 순간, 어느 샌가 방랑자는 내 곁에 다가와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대 앞에 펼쳐진 대평원이 보이는가? 이제 눈을 감아 보시게. 이제 보이지 않지. 보이지 않는다고 대평원이 없는가? 눈이라는 기관이 없어도 대평원은 존재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왜 그대는 눈에 의지해 대평원을 확인하려 하는가? 눈이라는 기관은 고착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잠정적이고 일시적이며 비결정적이지 아니한가? 그런데 아직도 그대는 기관에 집착하고 있는가?

대평원에 하늘이 펼쳐져 있네. 그대는 하늘을 어떤 색으로 칠할 텐가? 파란색으로 칠한다고 그랬나? 그러면 그대가 하늘을 파란색으로 그린 행위는 순수한, 그 어느 것에 영향 받지 않은 실존적 결단에 의한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보네. 그대의 자유로운 의지를 미혹해 그 누군가가 그대를 지시한 거라네. 본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 부름(기관)에 따른 거라네”

정처 없이 걷고 있는 방랑자의 신체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기관이 없으니 더욱 투명해진 신체를 꿰뚫어 볼 수 있었습니다. 기관 없이 신체를 활성화시키는 방랑자의 원초적 ‘에너지’가 보였습니다. 그것은 일상에서 익숙히 봐 왔던 그리고 평소와 완전히 다른 양상의 절대 자유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었습니다. 각각의 기관이 평소에 수행하던 기능을 멈추고 방랑자들의 몸을 가득 채운 ‘힘’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지대로 흘러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탈기관화를 통한 강렬한 플럭서스(fluxus)의 해방을 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걷기를 계속하며 저의 신체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기관들이 생명을 가두고 있지만, 제 신체에는 언제나 이 속박으로부터 탈주하고자 하는 힘, 삶의 원초적 에너지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기관을 훌훌 벗어 던져버리고, 신체 스스로가 규정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근원적 힘 말입니다.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 방랑자가 나였다는 것을...

 

“(...) 어떻게 저 편 세상의 사물들과 이 편 세상의 그것들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우리는 형상의 참여에 의해 이 편 세상의 사물들이 아름답다고 주장할 수 있다.”(플로티노스)

길에서 별을 조우했습니다. 누군가 새롭게 어두움 하나를 찢고 있었습니다. 새 별이 돋고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방랑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가볍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별의 현시(顯示)를 크로키 하더니,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제가 본 별을 그가 틀림없이 재현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방랑자의 별은 저의 진부한 상상의 나래를 여지없이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평소에 알고 있었던 상투적인 별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직선과 곡선의 흔적들로 점철된 별이었습니다. 좀 더 학술적인 표현을 빌려 보자면 비재현적이고, 비삽화적이고, 비서술적인 형상을 취한 별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별을 그리면 될 텐데 이렇게 뜬금없는 별 이미지를 일부러 애써 만들어 내야 하는지 방랑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대는 여전히 기관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네. 그러니 눈에 보이는 별만이 별이고, 눈에 본 별만이 아름답다고 보니... 자, ‘눈’이라는 기관을 떼어 놓고 다시 저 별을 보게. 얼마나 아름다운가?”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제 신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기관들을 하나하나씩 벗어던지며 충분히 가벼워질 때까지 말입니다. 다시 ‘저 편 세상의’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시 ‘이 편 세상의’ 방랑자의 캔버스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별에 대해 오랜 세월 제 마음속에, 제 기억 속에 새겨진 진부한 아름다운 것들, 또는 그것 때문에 거추장스러워진 것들이 스멀스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별과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이 떠나간 자리에, 별의 현시라는 원천적인 ‘힘’들이 춤추고 있었습니다. 기관 없는 방랑자는 이 힘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것이며, 가시적이고 거추장스러운 이 세계 속에 다른 세계의 침입을 증언하는 것이고, 새로운 ‘아름다움’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방랑자가 그린 하나의 직선이, 하나의 곡선이 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 자체가 별다움 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그것의 진정한 심미성은 방랑자의 무위(無僞)적 역할 때문에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한 내적 힘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이 편 세상’의 별을 바라보고 있는 제게 방랑자는 불쑥 말을 건넸습니다.

“그대 이 별 어떤가? 참 아름답지 않은가?

 

나의 집

“현존재의 본질구조로서의 세계-내-존재에 대한 이해가 비로소 현존재의 실존론적 공간성에 대한 통찰을 가능케 한다.”(하이데거)

길에서 나의 집을 조우했습니다. 방랑자가 남겨 놓은 집이었습니다. 방랑자는 그 곳에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방랑자에게 정착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랑자의 집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가는 집이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들어왔다 언제든지 나갈 수 있게 세상으로 개방된 집입니다. 안과 밖이 구분된 정착민의 집과는 달리 방랑자의 집은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안팎을 경계하는, 단속하는 문과 창이 없으니 경계가 무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있는 것인지 집밖에 있는지 모른 채 바람은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립니다. 좀 더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집은 기관 없는 방랑자를 닮았습니다. 기관 없는 집이었습니다. 신체를 삶의 중력으로부터 탈주시킨 방랑자처럼 기관 없는 집은 언제든지 하늘을 향해 비상(飛上)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방랑자가 선물한 나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어느새 기관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투명해진 내 몸에 예고 없이 그리움이 찾아들어 왔습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홀연히 던져진 채 바로 이 집, 이 공간에 실존(existence)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적막이 공간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제 나의 집, 나의 실존 공간은 절대자유로 춤추고 있었습니다.

 

<성시정>

1960년生. 현재 인문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종교문화분석 및 해석학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문화이론, 서양사, 예술사, 심리학, 철학, 사회학, 신학, 종교학, 민속학, 초심리학 강좌를 듣느라 7년간 ‘유목생활’을 하였다. 저서로는 ≪문화인류학 해석론의 위상과 전망≫, ≪UFO학과 인류학의 조우≫, ≪철학자들과의 수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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