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M'cube

그곳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음을

파랑

2016.08.31 ~ 2016.09.18
M’cube는 새로움에 대한 열정으로 실험적 영역을 탐구하고 그 한계에 도전하는 영아티스트를 발굴ㆍ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M’cube is a program to discover and support young artists who explore experimental territories with a passion for novelty and challenge their limits.

ABOUT

파랑

 




갤러리밈은 동시대 미술의 가치를 탐구하며 자유로운 실험의 영역에서 그 실천을 고민하는 젊은 작가들을 지원합니다. 파랑 개인전은 역량 있는 신진작가의 전시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영큐브 프로젝트’(Young Cube Project) 전시로 개최됩니다.



파랑 pa rang

2004년 동국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0 “The border"展 - 스피돔갤러리
2011 외줄타기 展 - 나무그늘 갤러리(강남역점)
2012 한 사람이 아닙니다 展 –갤러리 the K(인사동)
2013 초대 개인전 – 갤러리 각 (인사동)
2014 흔들리다 展 – 이랜드 스페이스
2016 그곳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음을 展 - 갤러리 밈

그룹전
2009 인큐베이터 展- 삼청 영 갤러리(서울)
2010 아우라 갤러리 개관전-아우라갤러리(서울)
2011 NEW wave artist 展 – 두루갤러리(서울)
2012 honored workers 展- 57th 갤러리(서울)
2012 “korea X japan " 展 SYSTEMA 갤러리 ( 오사카. 일본)
2012 SCAF 2012. 서울 아트 페스티발 (서울. 예술의 전당)
2012 AQUA art Miami beach art fair. (미국. 마이애미)
2013 open art canvas night (서울. 언오피셜 프리뷰 갤러리)
2014 맞이, 하다 展 (양평. 소머리국밥 갤러리)
2014 개관 5주년 기념 展 ( 양평 소머리국밥 갤러리)
2014 이마고 展 ( 서울. 인디 아트 홀 공)
2014 일러스트 다시 보다.-일기장에 쓴 얼굴展( 남양주. 서호 미술관)
2014 집을 展 ( 한남대학교. 가정관)
2015 동고동락 展 ( 인디 아트 홀 공)
2015 자라섬 풀빛 미술 페스티발
2015 sobab artfair (소머리국밥 갤러리)
2015 고양 미술 장터
2015 나는 무명 작가다 展 ( 아르코 미술관)
2016 파랑 & 김윤섭 2인전 ( 오월의 종 갤러리)
2016 painters painting (더블 스페이스)



나는 예술을 거창하게 포장하는 것이 싫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즉각적이고 단순하며 이성보다는 직감 또는 무의식적 잠재의식에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미술은 난해하고 복잡하고 너무도 현학적이고 철학적이다.
예술 작품이 해석되어야 할 종류의 개체이고, 해석을 통해 비로서 예술 작품이 예술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 해석이 작품의 아우라를 앞서는 듯 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주 전시를 보러 다니지만 마음에 남는 작품이 드물다. 무언가 비슷비슷하거나, 아니면 너무 형식적이거나, 너무 난해하고 어렵다. 사회 시스템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작업들이 최근에 많이 보여 진다. 미술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시각화한다. 물론 좋다. 필요한 작업들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예술의 가장 근본 적인 것이 너무 등한시 되는 것은 아닌 가 아쉽다.

미술은 주술에서 비롯되었다. 미술사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라스코(Lascaux)의 동굴 벽화와 빌렌도르프(Willendorf)의 비너스 일 것이다. 들소 사냥과 관련된 이 동굴 벽화는 주술적 상징이다. 현실에 대한 마음속 이미지를 모방해 현실의 이미지로 바꾸고 그 이미지와의 교감을 통해 현실을 바꾸는 것. 주술은 이러한 관념을 모태로 출발하고, 주술에서 태어난 미술은 이미지를 현실로 바꿔주는 매개장치인 동시에 현실을 바꾸는 부적 같은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을 거치면서 미술은 점점 아우라와 주술적 힘를 걷어냈다. 남은 것은 물감이라는 물질적 안료이고, 내용은 사라졌고 형식만이 남았다. 개념 미술은 물질보다 개념이 더 앞서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미지는 사라지고 텍스트만 남았다.

난 이미지의 힘을 믿는다.
단순히 세계와 자연을 재현하는 이미지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는 힘이 이미지에 있다고 믿는다. 사진은 오직 사실 만을 기록하고 보여준다. 카메라 렌즈에 잡히지 않는 것은 사진으로 볼 수 가 없다. 내가 회화에 집중하는 까닭이 이것에 있다. 오직 회화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표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것은 형상을 통해 신성한 무언가와 소통한다는 의미이다.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초월적인 부분은 엄밀히 말해 감각적인 요소들로 분석될 수 없으므로 감각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런 이유로 이미지를 이미지일 뿐이라고, 현실과는 무관한 사라져가는 감각에 불과할 뿐이라고 단정 할 수는 없다. 예술적 형상을 그저 가상에 불과 한 것, 진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취급할 때 예술은 취미와 즐거움을 주는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미지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상징적 환기력을 소외시키고 있다.

오늘날의 과학적 실증주의는 형상에 대한 지나친 합리적인 태도로 인해 비합리적인 힘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질과 형태에 대해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즉물적인 감정, 직접 지각한 것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쉽게 치부해버리는 태도는 선과 색과 형태들을 마치 아무런 상징성도 지니지 않은 물리적 최소 단위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해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인간의 수고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작품들, 기계적 복제를 통해 생산된 물품들이 예술의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인간이 형상에 대해 취하는 즉물적인 태도는 이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식적인 것이 되었다. 심지어 작가들까지도 이미지 보다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며, 회화가 지닌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작가는 일정 부분 무당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작품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현현하는 매개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에 좀 더 원초적이고 본질적이며 본능적인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회 현상이나 세상 돌아가는 일 등 바깥세상의 일보다는 인간 내적인 면을 들춰내고 끄집어 내 고자 했다. 쉽게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지 않는 솔직하고 진실 된 감정들, 그것이 어둡고 기괴하고 아름답지 못한 것일 지라도, 무의식 속에 늘 감추고 억누르고 있어야만 하는 인간의 감정들.. 그것을 끄집어내어 잊고 있던 인간의 또 다른 이면을, 불편한 인간의 본모습들을 대면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인간의 내면에서 잠시 눈을 돌려 자연과 조응하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혼의 움직임, 내면의 비전을 담고 있다. 나는 자연과의 조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잠재된 세게, 동시에 한 개인의 내면 속에 있지만 우주 전체가 함께 호흡하는 세계를 드러내고 그 세계를 교감하게 하고자 한다.



지독한 그리기의 열망

거칠고도 빠른 붓질로 이뤄진 이미지다. 자신의 감정과 에너지를 순간에 담아내려는 듯, 화면에는 찰나의 떨림과 파장이 담겨있다. 개인의 내면적인 고통을 그린 에르바르트 뭉크(Edvard Munch)의 <절규 The Scream>나 인간의 폭력성과 존재적 불안감을 표현한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일그러진 신체그림이 연상된다. 뭉게진 얼굴의 인물표현, 흘러내리는 물감, 정리되지 않은 선들이 주를 이루는 이러한 표현주의적 기법은 화면의 역동성을 더해주며 강렬한 인상을 준다.
힘찬 붓질로 만들어진 파랑의 그림에는 인물형상이나, 숲의 풍경, 혹은 삽화 같은 일상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담겨 있다. 작가는 살아 움직이는 것들,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한 단면들을 그림으로 풀어내며, 자신의 감정이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다양한 감정들을 그림에 분출한다. 이러한 작품이 일종의 ‘그림일기’라고 고백하는 작가는 그날 그날의 일상을 캔버스 안에 담아 내고 있다. 매일의 일상을 정해진 시간에 기록하며, 오직 자신이 관심 있는 것에 대한 유희적 그리기의 열망을 담아낸 것이다. 이는 마치 놀이에 근거한 어린아이들의 그리기와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파랑의 그림에는 하나의 주제에 몰입한 연작시리즈가 아닌 다양한 주제와 표현기법이 나타난다. 즉흥적이고 비이성적인 사유를 작품화하는 작가의 성향으로는 어쩌면 시리즈작업이 불가능한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파랑의 창작태도는 단순하고 확고하다. 스스로가 현대미술의 사조나, 난해한 이론을 자신에게는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메아리로 치부하며, 이에 기생하는 창작방식을 거부한다. 현대미술이 지나치게 이론에 치중해 개념과 아이디어만 난무한 작품으로 흘러가는 것과는 다르게, 파랑의 작품에는 예술창작 본연의 그리기의 열망이 가득하다. 또한 하나의 스타일에 정착하며, 그 스타일에 한계를 만드는 것을 경계한다. 그렇기 때문에 파랑의 작업이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나타나는 이유이다. 이러한 파랑의 작품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독한 그리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림일기와도 같은 파랑의 작품에는 슬픔과 우울, 그리고 인간 내면의 깊은 존재론적 불안이 깔려있다. <당신의 부재가 나를 관통했다>, <산산조각 나다>, <아무도 나를 읽어버렸다고 신고하지 않는다>, <나는 길에 떨어진 내 가슴의 울음을 발견했다>와 같이 명제에도 작품에 관통하는 ‘우울’이 구체적인 상황과 감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내면세계가 블루 톤의 색채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파랑이 무의식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블루’라는 색이 상징하는 것은 우울하고 차가운 것이다. 작가 개인의 삶에서 자주 경험했던 절망, 불안, 공포, 우울, 슬픔 등의 감정이 블루 톤의 작품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본다. 또한 작가의 가명이 ‘파랑’이라는 것도 자신의 작품세계와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지극히 사적이고, 자폐적인 이 그림들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품에 나타난 감정들은 우리가 외면하고픈 어두운 것들이다. 작가는 바라보기 싫은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이며 캔버스 안에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때 작품은 작가 개인의 치유의 장으로 존재하며, 그것들이 작가 개인만의 감정이 아닌 누구나가 경험하는 보편의 것들이라는 점에서 감상자에겐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원래 힐링이란 마음의 무거운 것을 열고, 그 오픈한 것들이 서로 만나는 순간에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어둡고 강렬하며 무거운 그림이지만, 파랑의 작품과 만났을 때 감상자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의 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만의 고통, 자신만 겪는 아픔이 아니라는 점에서 힐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파랑의 그림이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작가 개인만의 감정이 아닌, 누구나가 경험하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예술가들이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열린 감성으로 바라본 것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필터링 방식과 표현기법으로 번안해내는 자들이다. 시각예술가들은 그 작품을 통해 우리의 망막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며,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가슴에 큰 울림과 파장을 선사해 준다. 본다는 것, 시각이라는 것은 원초적이고도 직접적인 자극이기에 시각이미지 생산자들의 그 영향력은 타 장르의 예술가보다 더 크다. 긍정의 미학으로 아름답고 밝음의 예술을 지향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세상의 어둠을 바라보는 자가 있다. 어둠 또한 삶의 일부분이기에 외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바라봄도 필요하다. 이때 세상을 어둡게 묘사한 예술과 어두운 면을 보는 예술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추악과 부패 그로테스크로 일관하며 인간본성의 끝을 표현해 내는 근래의 현대미술이 세상을 어둡게 묘사하는 예술이라면, 파랑의 작업은 세상의 어둠을 바라보는 그림이다. 작가는 외면하고 싶은, 숨기고 싶은 그러나 누구나 지니고 있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과 어두운 일면을 담담히 작품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파랑의 그림에는 지독한 그리기의 열망이 삶의 열망으로 환원되어 나타나고,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하는 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고경옥 : 이랜드 스페이스 수석 큐레이터.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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