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be
순간 (Instant)
Hwang Hoseok
2026.10.21 ~ 2026.11.21
M’cube는 새로움에 대한 열정으로 실험적 영역을 탐구하고 그 한계에 도전하는 영아티스트를 발굴ㆍ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M’cube is a program to discover and support young artists who explore experimental territories with a passion for novelty and challenge their lim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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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Hwang Hoseok
보행의 시선과 침묵의 관조: 황호석 회화 세계에 대한 단상
이진명, 미술비평ㆍ철학박사
회화는 흐르는 시간을 공간이라는 고형의 영토에 정착시키는 매체이다. 황호석은 20년 넘게 기쁨과 감상(感傷)이 갈마드는 일상을 회화로 포착해 왔다. 이번 개인전 ≪순간≫은 그 시간이 도달한 하나의 지점이다. 황호석이 붙든 ‘순간(Instant)’에는 현재를 예찬하는 마음과 내면을 관조하는 시선이 함께 깃들어 있다. 그 깊이를 헤아리기 위해 20세기 미국 시문학이 구축한 가장 대조적이면서도 찬란한 두 세계를 빌려오고자 한다.
하나는 뉴욕의 소란스러운 거리에서 매 순간 유동하는 일상의 정취를 날것 그대로 포착해 낸 프랭크 오하라(Frank O’Hara, 1926-1966)의 세계이다. 점심시간의 거리를 걸으며 쓴 『런치 포엠즈(Lunch Poems)』에서 보듯, 그의 시학은 철저히 ‘보행하는 인간’의 시선에 기초하며 찰나의 우연과 친근한 일상의 감각을 중시한다. 다른 하나는 세계의 배후에서 사물의 본질을 지극히 엄밀하고 고요하게 관조하는 월래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1879-1955)의 세계이다. 스티븐스에게 시는 상상력과 현실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지적인 영토이며, 그의 만년 시 「사물에 대한 관념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Not Ideas about the Thing but the Thing Itself)」의 제목이 말하듯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사물 그 자체를 추적하는 명상의 계기가 된다. 황호석의 신작들은 오하라가 거닐던 ‘순간의 거리’와 스티븐스가 침묵 속에 응시하던 ‘영원의 숲’이라는 두 축을 정교하게 가로지르며, 그 이면에 숨은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낸다.
황호석 회화의 첫 번째 축은 오하라의 세계관과 공명한다. 감각적이고 다정한 일상을 포착하는 시선이 그것이다. 신작 <걷는 사람들>과 <아침 운동>은 보행자의 시선이 담백하게 드러난 수작이다. 신록 우거진 초록빛 숲길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가는 인물들, 그리고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부서지는 황금빛 언덕 위에서 저마다의 호흡으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개념, 이념, 의제라는 수식을 걷어낸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단면이다. 이는 오하라가 「당신과 코카콜라를 마시며(Having a Coke with You)」에서 연인과 함께하는 사소하고 일시적인 순간을 세상의 어떤 걸작보다 귀하게 여겼던 마음과 만난다. 그렇다고 이 화면들이 무구한 낙관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황호석은 일상적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내면의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되풀이되는 산책과 운동이라는 루틴 속에서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다독인다. <오르는 길>은 낮달 아래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흙길을 주제로 삼는데, 목적지에 도달하는 결과는 화면에서 지양된다. 작가가 예찬하는 것은 오르고 걷는 행위 자체가 지닌 찰나의 역동성과 거기서 피어나는 감각적 온기다.
그러나 황호석은 일상의 편린(片鱗)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는다. 오하라의 발걸음, 곧 현장의 시선은 이내 스티븐스의 관조의 세계로 스며든다. 인물이 완전히 소거된 채 고요한 심연을 드러내는 <Instant 1>은 스티븐스가 「눈사람(The Snow Man)」에서 요구했던, 자신을 비워 낸 응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듯한 명징함을 선사한다. 울창하고 깊은 초록빛의 숲과 그 아래를 흐르는 짙은 물결, 그리고 경계에 놓인 흰색 건축물의 대비는 사물의 본질만을 남기려는 고도의 정제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물 위에 거울처럼 고스란히 비친 사각형의 그림자는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단면을 영원의 공간에 고정하려는 지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코끼리 의자와 소년>의 수면에 맺힌 상과 기하학적 격자무늬의 벽면 역시 현실의 풍경을 구조적인 추상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조형적 엄밀함의 결과다. 화면을 가득 채운 독보적인 초록의 스펙트럼 또한 단순한 식생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 세계와 내면의 의식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는 상상력의 영토이며, 스티븐스의 문학 세계를 회화로 옮겨 놓은 듯하다.
황호석 회화의 힘은 이 대조적인 두 세계가 하나의 화면에서 절묘하게 융합될 때 정점에 이른다. 축제의 기억을 소환하는 <새와 소년>과 <회전목마와 J>는 유년의 무진(無盡)했던 즐거움과 아련한 존재론적 향수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놀이의 마티에르 속에서 백마를 탄 소년 ‘J’가 던지는 정면의 시선은, 찰나의 축제 한가운데서 영원히 변치 않을 삶의 본질을 마주하게 한다. 그 본질은 다름 아닌 애정의 시선, 사랑하는 마음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오하라에게로 돌아간다. 연인과 마시는 한 병의 코카콜라가 어떤 걸작보다 귀하다고 노래했던 시인처럼, 황호석이 순간을 영원으로 끌어올리는 힘 역시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시선에서 나온다. 거리의 시선과 숲의 관조를 하나로 묶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이다.
이 모든 여정의 서사는 무한한 우주 혹은 검은 대양 위에 홀로 분홍빛 튜브를 타고 떠 있는 <항해>로 수렴된다. 칠흑 같은 화면 속에서 은밀하게 반짝이는 별빛들은 매 순간 흔들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고독하고 평화롭게 자신만의 영혼을 운항하는 인간 존재를 향한 조용한 헌사다. 바닷가에서 노래하는 한 목소리가 무심한 바다에 질서를 부여한다고 썼던 스티븐스의 「키웨스트에서의 질서의 관념(The Idea of Order at Key West)」처럼, 이 작은 항해자는 광막한 어둠 속에서 자기만의 질서를 그려 나간다.










































